언제 보았던 걸까.
1970년대 분위기가 젖어 있는 어린시절에서였을까 아니면 기억에도 없는 이전 생에서였을까.
그의 그림이 낯설지 않았던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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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국내 한 디자인페어에 출품된 작품.
Q.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당신의 그림은 8년 전 감동 그대로였다. 처음부터 난 당신 그림이 참 친근하고 좋았다. A.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고 기쁘다.
▲ 작년 정물을 주제로 열린 바로세로나 아트마켓에 출품된 작품.
Q.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따스함이었다. 캣랩과 콜라보한 <모자 쓴 고양이> 일러스트 작품도 그랬다. 모성의 포근함을 느꼈다. A. 아무래도 그림에는 당시의 내 감정이라든지 관심사, 반추되는 과거, 소소한 일상 같은 것들이 그대로 투사되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이 본 고양이 그림은 대부분 이곳 알타퓨야에 살면서 그린 것들이다. 디자이너 보다는 그림쟁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면서 그린 그림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 있겠다.
▲ 캣랩 에코백으로도 제작된 작품.
Q. <모자 쓴 고양이> 작품은 모란 꽃과 중절모가 참 인상적이었다. A. 멀리 스페인에 와 살다 보니 평화로운 나날 가운데서도 자주 고국이 그리워진다. 그 그림에 이곳의 초목보다 목단(모란)을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그런 마음이 작용해서일 거다. 그리고…, 모자를 씌운 것은 그림의 주인공으로서 관객에게 좀 더 예의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Q. 캣랩과 콜라보한 첫 작가인 만큼 독자들에게 당신을 소개하고 싶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좋은 생각이다. 난 사과나무가 많은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고 숙명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하고선 그래픽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디자인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해외유학을 알아보던 중에 여행 차 스페인에도 들렸던 건데 이 나라 매력에 흠뻑 빠져 그대로 눌러 앉게 되었다. 바로셀로나 엘리사바 디자인학교에서 멀티미디어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 SOL 90>, <EI Punt AVUI>와 같은 신문사에서 최근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
Q. 고양이와는 언제부터 가깝게 지냈는가. A. 남편 엑토르와 결혼하고 이곳으로 이사온 뒤부터다. 알타뷰야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조용하고 경치가 좋은 데다 바로셀로나에서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어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고양이가 참 많이 산다. 사람 수 보다 고양이 수가 더 많다. 몇 일 낯을 익힌 고양이들은 나를 보고 살갑게 따라오더라. 그래, 밥을 줬다. 지금은 한 15~20마리 쯤 돌보고 있다. 대용량 사료를 사다가 가족들과 함께 이곳 저곳에 놓아주고 있다.
▲ 엄마와 아빠를 따라 어릴 적부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유혜영 작가의 아들 마르셀. 가족 모두가 캣맘인 셈이다.
Q. 당신 작품은 상당히 동양적이다. 고양이 사랑도 그런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데 맞는가. A. 정확히 봤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데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적 정서를 갖고 있으니 그림에 동양적 정서에 배어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일 거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도 자라온 어릴 적 환경이라든지 자연에 경외감을 갖는 동양적 자연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왜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갖춰야할 덕목을 자연에서 배우지 않았나. 대나무에게선 절개를, 원앙에게선 부부의 정같은 것들…. 내게도 고양이는 하나의 자연이다. 존재 자체가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때론 깊은 깨달음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다만 다른 자연물과의 차이가 있다면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Q. 통감한다. 애묘인들은 우주만물 중 고양이와 특히 많은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한 적 있다. 고양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우주의 질서도 깨닫고 말이다. 고양이를 통해 당신이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A. 좋은 질문이다. ‘적당한 거리감’이다. 늘 밥을 주고 이름을 불러줘도 약 30cm라는 거리를 유지했다. 친해진 다음에야 무릎에도 올라오고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했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한 고양이는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는 걸 고양이에게서 배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게 인간이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하려면 타인과의 사이에 공간 하나를 둬야한다.
Q.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의 그림 속 사람이나 고양이들은 당신과 닮아 있기도 하다. 주변의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 또한 고양이와 소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는데, 맞는가. A. 그렇다.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말이 있다. 당신도 두 고양이를 책임지고 있는 애묘인이라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걸로 안다. 고양이도 사람처럼 제각각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때문에 나와의 관계맺음도 각기 다르다. 나를 위로해주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곁에서 남자처럼 보호해주는 고양이가 있다. 이런 고양이와 나와의 관계성이 그림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캐릭터를 갖고 나와 교감하기 때문에 의인되고 새로운 존재로 재해석되는 면이 있다.
▲ 애묘인이거나 고양이와 함께 산다면 충분히 공감되는 작품들.
Q.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진 않은 것으로 안다. 역시 자연의 일부로 보기 때문인가. A. 그렇다. 자연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살다 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곳이 환경이 고양이들이 살기엔 도시보다 낫기 때문이기도 하고.
▲ 가장 편안하고 가장 있고 싶은 곳에 있는 고양이. 자연스럽다.
Q. 알타퓨야고양이협회까지 만들어 고양이를 보호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발촉했는지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A.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의 일이다. 내가 돌보던 고양이들이 주민신고로 보호소로 끌려갔다. 스페인 법상 포획되더라도 안락사를 당하지 않지만 문제는 보호소 환경이 열악해 치사율이 굉장히 높다는 거다. 3×3×2m 정도 되는 철장에 가두는데 그 안에서 한 두마리만 병에 걸려도 폐사율은 굉장히 높아진다. 건강한 고양이 빼곤 다 죽는다고 보면 된다. 고양이를 보호하려면 협회를 정식으로 발촉하고 시에 신고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내 고양이를 찾으러 왔다는 말에 보호소 직원은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치만 내 휘파람 소리를 알아 들은 고양이들이 닭장 같은 곳에 딱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야옹거리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 스페인 길고양이 보호소.
Q. 지역 고양이보호협회 창립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가. 근황이 궁금하다. A.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결혼하고 아들 마르셀이 태어난 다음까지 남편 엑토르가 쓴 여행하며 쓴 일기와 마르셀이 태어나고 현재까지 내가 쓴 그림일기를 책으로 내기로 했다. 고양이 그래픽 에세이도 낼 것 같다. 내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 이야기를 다룰 참이다. 우리 동네 고양이 가족관계라든지 이집트의 고양이 신화라든지…, 즐겁게 상상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상한 노랑, 유혜영은
충주가 고향으로 숙명여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던 1992년 미국 유학을 갔다가 그해 발생한 LA 폭동으로 귀국해 그래픽디자인과 인테리어 프리랜서로 활약했다. 1996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제디자인대학이 개교하면서 1기로 들어갔지만 졸업 전인 1998년에 스페인의 엘리사바 디자인학교로 옮겨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유럽의 대표적 신문 디자인 회사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SOL90’에 입사했고 이후 신문사 전속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면서 모교인 엘리사바에서 2002년부터 6년간 겸임교수를 지냈다. 그는 유학 시절 현지 학생보다 어학 실력이 달리자 ‘디자인 양으로 승부하자’며 제일 먼저 등교해 밤 9시 문 닫을 때까지 남아서 작업을 했다. 학교 수위 모두가 얼굴을 아는 유일한 학생으로, 과제를 항상 2개씩 제출하는 열정을 보인 끝에 최우수로 졸업했고 졸업 전에 디자인회사에 특채되기도 했다. 스페인에 유학생 비자로 건너와 취업비자로 변경한 1호이기도 한 그는 스페인을 고국에 소개하는 일에 더 매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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