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을 맺어드립니다, 후쿠이 현 '고양이 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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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년 10월 11일 / by 작성자catlab / 조회수2,66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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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출판사 슈와 시스템
야옹 야옹.
절 건축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경내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걸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다니던 주지스님 눈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종이박스 하나가 들어왔다. 소리는 분명 거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주지스님은 종이박스에 조심조심 다가가 그 안을 스윽 들여다 봤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갈 곳을 잃어 서글프게 울고 있는 네 마리 고양이였다.
일본 후쿠이 현에 위치한 고탄조지 절. 2004년에 지어진 이 절은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절'로 유명하다. 절을 건축하던 당시 네 마리의 고양이가 이곳에 유기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타바시 고슈 주지스님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고양이와 고탄조지 절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 고탄조지 절의 부 주지스님 이나와시로 쇼준. 고양이와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자는 그의 아이디어로 사람과 소중한 인연을 맺는 고양이들이 늘고 있다. 사진출처: 산케이 신문
사실 절에서 처음부터 고양이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네 마리 고양이를 돌보는 사이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수가 많아지면 이에 따른 문제들이 생기는 법. 고양이 사료비 및 치료비와 같은 문제와 함께 고양이들 사이의 영역다툼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절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통해 고양이 개체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이 고탄조지 절이 고양이를 돌봐주는 '고양이 절'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절에 고양이를 유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고탄조지 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끝에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인연을 맺어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SNS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약 270마리의 고양이들이 새 인연을 맺어 절을 떠났으며, 약 20~30마리가 절에서 생활하고 있다.
절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경내 이곳 저곳에서 목격된다. 특히 밥을 먹기 위해 모이거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은 이미 SNS를 통해 유명해져 고양이 절의 대표적인 풍경이 되었다.
△ 고탄조지 절의 고양이 식사 모습. 빗물받이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이런 풍경을 만들었다. 사진출처: 산케이 신문
△ 고탄조지 절의 스님들은 고양이 돌보기도 하나의 수행으로 여긴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스님들의 마음이 안심하고 낮잠을 청하는 고양이 모습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사진출처: 산케이 신문
얼마 전 고양이들의 이런 모습은 <고양이는 고민 따위 안 한다냥(ねこは なやまニャい, 2016.06)> , <네코데라, 고양이와 연을 맺어주는 절(ねこでら 猫がご縁をつなぐ寺, 2016.06)>이라는 포토에세이 집으로 엮어져 출간되었다.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 절을 찾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돌아가듯, 이들 책에 실린 고양이 사진과 스님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 고탄조지 절의 스님들. 가운데에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스님이 이타바시 고슈 주지스님. 고탄조지 절에서는 주기적으로 ‘고양이 양도회(譲渡会)’를 열어 사람들과 고양이의 인연을 맺어주고 있다. 사진출처: 산케이 신문
고탄조지 절에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절에 있는 고양이들이 모두 인연을 맺어 절을 떠나고 100년, 200년이 지난 뒤에 이를 유래로 사람들의 연을 맺어주는 절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와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는 곳이라고 알려지면서 사람과의 인연을 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절에서는 고양이들이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고양이 납골당도 운영하고 있다. 가벼운 기분으로 동물을 기르고 버리는 게 아닌, 부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어서다.
수백 번, 수천 번 스쳐가는 사람들 중에서 맺게 되는 인연이 소중하듯 수백 번, 수천 번 스쳐가며 만난 고양이와의 인연도 각별하고 소중하다. 지금 바로 옆에서 행복을 주고 위안을 주는 당신의 고양이는 오직 ‘당신’이라는 사람과 인연을 맺기 위해 그렇게 찾아왔을 터이니 말이다.
고탄조지 절 페이스북
사진 및 내용참고: 산케이 신문, 출판사 슈와 시스템
글 | 일어 번역가 서하나
건축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을 했지만 내가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남이 해 놓은 디자인을 보는 게 더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도쿄에서 4년을 지내다 왔다. 지금은 일본의 좋은 책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신체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영접하지 못하고 캣랩 기사 꼭지를 통해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kotobadesign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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