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민지, 고양이의 생명력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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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년 05월 17일 / by 작성자catlab / 조회수3,65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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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작가는
시멘트 사이를 뚫고 나온 잡초에 여러 번 눈길 준 적 있다.
애틋했다. 생명이라는 그 소중하고도 비루한 이름을 하고 있어서.
Q. 우선 고양이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된 이유부터 들어봐야할 듯 하다. 고양이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가.
A. 난 사실 고양이 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좋아한다. 고양이를 포함해 모든 동물들은 소중하고, 놀라운 존재들이다. 다만 우연히 길에서 데려와 키웠던 고양이가 다시 길을 나선 뒤, 두번 다시 볼 수 없게 된 일이 길고양이에 좀 더 애착을 갖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가슴에 참 사뭇쳤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길에서 보이는 모든 고양이가 거리를 나선 그 하나뿐인 고양이로 느껴졌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그리는 내게 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느냐고 묻는데, 대답 해보자면 길에서 보이는 모든 고양이가 이미 내가 키웠던 그 고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당신에게 고양이는 무엇인가. 작가라는 인생 길에 있어 어떤 존재인가.
A. 먼저 이 고양이들이란 길고양이들로 초점을 맞춰 말하겠다. 한마디로 그들은 놀라운 존재다.
처음에는 그들의 삶속에 인내, 사랑, 고통, 묵묵함, 순수함과 같은 모습들을 봤다. 그 모습들은 언제나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사람이 만든 회색의 도시 안에서 그리고 사람이 만든 왜곡된 편견 속에서도 그들은 사람들과 살아간다. 그저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이런 고양이들의 모습 속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변 도시인들의 모습까지 엿보여지며, 심지어 비둘기나 화초처럼 주변에 보이는 다른 생명들의 숨소리까지 느껴져 희망을 얻고 있다. 고양이는 내게 삶의 시각을 넓혀줬고, 희망을 줬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일깨워준 놀라운 존재다. 그렇지만 나 또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동시에 든다. 희망을 얻은 것과 미안함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Q. 당신의 작가노트에서“어떤 한정된 상황 속에서도 주저함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무한한 에너지는 경이롭다”라는 글귀를 발견했다. 당신이 느낀 길고양이의 생명력을 한 마디로 표현해본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A. 포화가 쏟아지는 전쟁터 속에서도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어린아이들과 흡사하다. 본인들의 책임이 아닌 상황에서 쫓기고 위협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순진할 정도로 마냥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 그림자2_33.3×45.5cm_oil on canvas_1013_01. (C) 김민지.
▲ 길 위에서_53.0x45.5cm_oil on canvas_2012. (C) 김민지.
Q. 당신의 그림 속 고양이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말해 고양이 그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가. ‘생명’, 그 언저리에 있는 무엇같은데….
A. 고양이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나와 함께 했던 고양이를 비롯해 이 땅의 모든 길고양이들에 대한 안녕의 염원을 담았다. 그 마음은 앞서 잠시 언급했는데 비둘기, 보도블록 사이의 풀, 화분 속의 식물들처럼 도시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 외의 다른 생명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런 살아 있는 것에 대란 일련의 관심은 자연과 떨어져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향한 메시지로 발전했다. 그들에게 생명 자체의 고귀함을 알리고 싶었고 그 고귀함이 당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생명존중’, 그것은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삶이 같은 질량의 존엄함으로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Q. 당신의 생명존중은‘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인디언 속담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표현 방식이나 기법, 재료 등이 있는가.
A. 표현방식 부분에서 말해보겠다. 내가 직접 찍거나 다른 분들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주로 소재를 얻고 있는데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뿐 아니라 길고양이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상처와 눈곱과 때 묻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지저분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하는 인간관점의 고양이 모습을 회피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작품일수록 이런 표현방식이 더 강해지는데 이것은 그림과 현실 속의 고양이가 갖고 있는 간극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그런 모습의 고양이지만, 그들의 감정과 행동, 표정 등에서 드러나는 생명체로서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내 의도가 만약 관객에게 전달된다면, 관객들은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 상처 입은 모습, 때 묻은 모습이더라도 고양이가 갖고 있는 그 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멸시하거나 불편해하기 보다 좀 더 다가가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역으로 하는 건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며 이것은 곧 내가 작업에서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 마주침2_19.0x24.0cm_oil on canvas_2013. (C) 김민지.
Q.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고양이를 싫어한다. 이런 오해와 편견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심적 여유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도 추측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민감한 이야기라 간단히 말하긴 어렵고 그 중 하나만 이야기해보자면, 역사와 관련 있다고 본다. 식민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겪고, 급격한 경제발전까지 여러 상황들이 쉴 틈 없이 이어졌고 복잡하게 엉켜 있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지우고 민화, 신화 등 전래문화들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왔었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순한 민족이었다.
Q. 일제침략과 6.25전쟁이 우리 민족에에게 준 상처는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전에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 있다. 그때도 통감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양이 외에 즐겨 그리는 대상이나 작가 또는 디자이너로서 하고 있는 다른 활동이 있는가.
화초나 비둘기, 가로수와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생명들도 소재로 삼고 있다. 길고양이가 주축이 되고 있는 이 작업들은‘도시의 생명’시리즈로 분리하고 있다. 가끔 이 주제에서 벗어나 고양이들을 캐릭터처럼 단순화하여 팬시한 느낌의 그림을 그린다. 작년 하반기에는 호박에 지친 내 감정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도시의 생명’ 이외의 작업들은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것에 지쳤을 때 선택하는 나름의 일탈의 방법이다.
그리고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각디자인에서 배운 기법이나 표현 등을 회화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예로 시각디자인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여 애니메이션을 배웠었는데, 이런 경험이 내 작품에서 동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 행운목_15f_oil on canvas_2013. (C) 김민지.
▲ 바람이분다_80.3×116.7cm_oil on canvas_2015. (C) 김민지.
Q. 작품의 성장은 작가 내면의 성장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된다. 끝으로 당신에겐 어떤 길(소명)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가.
A.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작은 움직임이 예상하지 못했던 큰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내 그림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그저 어떤 그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라도 내가 의도했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는 상황이 있다. 만약 그 사람이 주변의 보이는 풀, 나무, 고양이, 비둘기들의 생명과 삶을 조금이라도 존중해준다면 내겐 가장 큰 영광이자 보람이다. 그 반응들이 당장 보이지 않고 직접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이유다.
붓, 캔버스 틀이 된 나무들, 기름이 된 식물들 등 나는 다른 많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살아가며 작업도 하고 있다. 소재를 선택하고 작업을 구상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무겁다. 작업은 내 삶의 이유이지만 다른 생명과 삶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 cat lab -
▲ 하얀고양이_oil on canvas_33.3×53.0_2012. (C)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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